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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93년 신세계 이마트(창동점) 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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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할인점 이마트. 신세계가 새로운 형태의 점포를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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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이마트 출점 당시 신문기사

1993년 11월 12일 신세계는 서울 도봉구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을 개점한다. 이마트는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이자 최초의 할인마트였으며 국내 유통 지형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전통시장이나 동네 슈퍼마켓에 익숙했던 소비자는 이마트의 등장에 커다란 문화충격에 휩싸였다. 우선 1,500평에 달하는 거대한 매장 규모에 압도당했다. 할인점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기에 상시 저가로 다양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인 주요인이었다. 또한 1990년대 초까지 공산품은 백화점과 대리점에, 야채나 고기 등 신선식품은 전통시장으로 양분돼 있었는데 소비자들은 기존 백화점이나 슈퍼보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공산품과 신선식품을 살 수 있다는 점에 열광했다.

오픈 첫날 이마트 창동점에는 약 2만6천8백여 명의 손님이 몰려들었다. 첫날 매출만 1억8백만 원에 달했다.

대형마트 사업의 가능성을 포착하다

이마트의 등장은 신세계그룹이 백화점 사업에서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업태를 모색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백화점 시장은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치열한 경쟁으로 높은 마케팅 비용이 발생했고, 높은 초기 투자 비용에 비해 매출 증가율이 둔화하는 등 성장성이 낮았다. 바겐세일 기간에만 반짝 매출이 증가하는 등 고객 유인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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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이마트 창동점(서울 도봉구) 당시 전경 (출처 : 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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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출처 : 신세계 그룹)

그룹의 고민이 깊어져 가던 와중 이명희 당시 신세계백화점 상무는 1987년 부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로 아픔을 겪는다. 슬픔을 달래며 떠났던 미국 여행에서 이명희는 프라이스클럽, 월마트 등 창고형 점포를 보고 한국형 대형마트의 사업 가능성을 포착한다. 귀국 후 그는 신세계 내 대형마트 전담사업부를 구성하도록 지시한다. 사업부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유통시장 현황을 면밀히 살핀 후 전략을 수립하고 1993년 11월 서울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을 오픈했다.

이마트의 가격파괴 신드롬

이마트의 주요 성공요인은 상시 저가정책(EDLP, Every Day Low Price)과 저비용 운영(LCO, Low Cost Operation)이었다. 이마트는 유통 단계를 줄이고 대량 매입을 통해 납품 가격을 낮췄다. 매장 인테리어를 간소화하고 마케팅과 판촉 비용을 최소화했으며 최소한의 판매사원으로 인건비 지출을 줄였다. 이마트는 운영 비용을 줄인 만큼 상품 가격을 더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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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트 셔틀버스 (2001년 6월 30일부로 운행중지 되어 지금은 이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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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트의 상시 저가정책(EDLP)

또한 이마트는 공격적인 다점포 구축으로 시장을 선점했다. 1호점인 창동점을 시작으로 서울 인근 지역부터 점포를 넓혀나가 전국에 수십 여개의 매장을 단기간에 출점했다. 위치는 도심 위주로 자리 잡고 셔틀버스를 운영, 편의성을 높였다.

이마트가 가격파괴 신드롬을 일으키고 고객을 대거 끌어가자 대형 식품 기업들이 납품을 거부하는 등 반발이 나타났다. 이마트가 자사 대리점보다 물건을 싸게 팔아 공급 및 가격 체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트에 입점한 경쟁업체의 매출이 급속히 증가하자 반발했던 식품업체들은 다시 납품을 시작했다.

한국 소비자들에 맞춘 한국형 대형마트

이마트의 성장은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민들의 해외 견문이 넓어지고 소득이 향상되면서 브랜드보다 품질, 신분 과시보다 가성비를 우선시하는 합리적 소비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또한 소비 욕구가 다양화되어가면서 다양한 상품을 갖춰 한자리에서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이마트에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마이카(my car)시대가 열리면서 대량 구매 가능성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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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2월 이마트 물류센터 오픈(국내 할인점 최초) [출처 : 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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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트 PB(Private Brand) ‘노브랜드’ 매장 [출처 : 이마트]

이마트가 큰 성공을 거두자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대형마트를 출점했다. 까르푸, 월마트, 코스트코 등 외국계 대형마트도 들어섰다. 그러나 이마트는 외국계 마트의 공세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외국계 마트는 식품보다 비식품 비중이 높고 식품류에서는 신선식품 비중이 적었다. 그러나 이마트는 할인마트의 주 고객인 30~40대 주부들이 원하는 신선식품 분야에 힘을 실었다. 또한 이마트는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매장 레이아웃을 설계해 보다 편한 쇼핑이 가능했다. 한국형 대형마트로 외국계 유통공룡 기업을 막아낸 이마트는 한국유통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마트는 이후 대형마트 최초 물류센터 오픈(1996), 최초 해외시장 진출 및 자체상품(PB) 출시(1997) 등 수많은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