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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LG)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발전시켜온
한국 대표 기업인의 삶과 경영철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물

구인회

1907년 8월 27일 - 1969년 12월 31일
구인회

LG그룹의 창업주입니다. 국내 최초로 라디오, 선풍기, 전화기, 텔레비전, 세탁기 등을 생산하여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당시 나라의 기술력과 자금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일들을 끈질기게 도전했던 기업인으로, 기업이야말로 국가의 발전과 국민생활의 안정에 기여해야 하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기업경영을 통한 보국의 신념을 지켜낸 인물입니다.

생애

1907 ~1947

  • 1907.8
    •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 출생
  • 1920
    • 허을수와 혼인
  • 1921
    • 지수보통학교 2학년 편입
  • 1926
    • 중앙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 1929
    • 지수협동조합 이사장 취임
  • 1931.7
    • 구인회 포목상점 개점
  • 1940
    • ‘구인상회’로 상호명 변경
  • 1945.11
    • 조선흥업사 설립, 무역업 시작
  • 1947.1
    •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설립
  • 1947.1
    • 최초의 국산화장품 럭키크림 생산

1948 ~1957

  • 1948.4
    • 화장품 연구실 설립(서울 창신동)
  • 1952.4
    • 동양전기화학공업사 설립
  • 1952.8
    • 락희화학, 국내 최초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 도입
  • 1955.9
    • 락희화학, 럭키치약 출시

1958 ~1967

  • 1958.10
    • 금성사(현 LG전자) 설립
  • 1959.3
    • 락희유지공업주식회사 설립
  • 1959.11
    • 금성사, 국내 최초 라디오 생산
  • 1960.3
    • 금성사, 국내 최초 선풍기 생산
  • 1961.7
    • 금성사, 국내 최초 자동전화기 생산
  • 1962.5
    • 한국케이블공업(현,LS전선) 설립
  • 1963.8
    • 락희비니루공업 부산 동래공장 준공
  • 1964
    • 한국경제인연합회(현 전경련) 부회장
  • 1965.4
    • 금성사, 국산 냉장고 1호 생산
  • 1966.4
    • 락희유지공업, 국내 최초 합성세제(하이타이) 생산
  • 1966.8
    • 금성사, 국내 최초 흑백 텔레비전 생산
  • 1967.5
    •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설립

1968 ~1969

  • 1968.3
    • 국내 최초 에어컨 생산
  • 1968.11
    • 연암도서관 건립, 진주시에 기증
  • 1969.5
    • 금성사, 국내 최초 세탁기 생산
  • 1969.10
    • 민간기업 최초 락희화학공업사 기업공개
  • 1969.12
    • 연암문화재단 설립
    • 별세

주요사건과 업적

  • 1929년. 협동조합을 만든 청년

    서울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구인회는 당시 학비를 지원해준 장인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경남 진양군 지수면)으로 돌아와 정착한다. 구인회는 마을에서 일본인들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조선 사람 가게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일본인이 생필품을 독점해 큰 돈을 버는 것에 대항해 서로 힘을 합쳐 상생할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모아 ‘협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싼값에 좋은 물건을 판 지수협동조합은 큰 인기를 끌었고 이웃의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하였다.

  • 1931년. 포목점 주인이 된 구인회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구인회는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경남 진주에서 ‘구인회포목상점’을 열어 사업가의 길을 나선다. 1936년 대홍수로 구인회는 재산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구인회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대홍수 뒤에는 풍년이 들어 혼례가 많아지고 포목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고 돈을 빌려서라도 대량의 포목을 사들였다. 구인회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 들었고, 대풍을 맞이한 사람들은 혼례를 위해 비단과 명주를 찾기 시작했다. 구인회포목상점은 전례 없이 큰 매출을 올리게 된다. 이후 구인회는 구인회포목상점의 상호를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변경(1940년)하고, 사업의 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 1947년. 즐거울 락, 기쁠 희. 락희화학공업사 설립

    해방 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을 하고자 했던 구인회는 부산으로 진출해 미군정청 승인 제1호 무역업체인 조선흥업사를 설립(1945년)한다. 우연한 기회로 ‘아마쓰크리무’라는 화장품 크림을 만드는 기술자 김준환을 만난 구인회는 그를 스카웃해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 본격적인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전 재산을 털어 부산시 서대신동의 자신의 집에 공장을 차리고 자본금 300만원, 종업원 20명 규모로 제조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일제나 미제보다 낮은 가격에 좋은 품질을 인정받은 여성 화장품 '럭키크림'은 날개 돋힌 듯 팔리며 대성공을 거둔다.

  • 1952년.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용품 생산

    럭키크림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크림통 뚜껑이 쉽게 깨지는 문제가 있었다. 구인회 회장은 안 깨지는 뚜껑을 고민하던 중 당시 국내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플라스틱을 생산하기로 결심한다. 높은 제작비용 등 위험 요소가 많았음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1952년 마침내 플라스틱 생산에 성공하여 크림 통 뚜껑 뿐 아니라 빗, 비눗갑, 칫솔, 담뱃갑 등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했다. 특히 플라스틱 훌라후프를 제작 판매하여 큰 돈을 벌어들였다.

  • 1959년. 국내 최초의 라디오

    어느 날 구인회는 우연히 접한 하이파이 전축에 이끌려 라디오를 제작하는 일에 뛰어든다. 강한 추진력의 구인회는 락희의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마다 라디오 한 대씩 갖게 될 미래를 꿈꾸며 전자공업 사업에 뛰어든다. 그리하여 1958년 탄생한 ‘금성사’는 1959년 제1호 국산 라디오(A-501) 생산에 성공한다. 구인회는 기술수준이 낮으면 외국에서 배워오면 되는 것이며, 미래사업인 전자공업을 개척하여 국익에 이바지해 보자며 직원들을 설득시켰다. 라디오 국산화의 성공은 이어 선풍기, 흑백TV, 냉장고, 에어컨 등 주요 가전제품들의 최초 국산화를 차례로 이끌어낸 시발점이었다.

  • 1966년. 최초의 텔레비전과 또 다른 최초의 기록들

    구인회는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보유한 기업인이다. 라디오 생산 성공 이후, 최초 국산 냉장고(GR-120)도 만들어낸 그는 당시 KBS, TBC 등의 개국으로 텔레비전 수요가 많아질 것을 예상하고 텔레비전 생산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미리 많은 것을 준비했던 금성사는 정부의 사업 허가를 받은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1966년 최초의 국산 텔레비전(VD-191)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후 구인회와 금성사는 68년 최초의 국산 에어컨, 69년 최초의 국산 세탁기까지 만들어내며 국내 가전 업계의 일등 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질 좋은 국산 제품으로 자국민 생활의 수준을 향상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 1967년 국내 최초 민간정유사 호남석유(현 GS칼텍스) 설립

    1965년 정월 초 구인회 회장은 합성수지의 원재료가 만들어지는 첫 번째 공정인 정유사업에 진출해 보자는 사업계획을 보고 받는다. 당시 민간기업이 정유사업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구인회는 늘 그랬듯 우리 산업의 미래를 위해 뜻있는 사업이 틀림없으니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락희화학은 정부관계자들을 만나 사업진출을 타진하고 사업을 구체화하였으나, 정부는 갑작스레 제2정유공장 사업자를 공모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구인회는 실망하지 않고 그동안 준비를 많이 했으니 사업자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고, 민간도 이제 공공연히 에너지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아니냐며 직원들을 다독였다. 1966년 11월 민간최초의 정유사업권을 두고 정부에서 진행한 사업자 공모에 락희화학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마침내 실수요자로 선정된다. 이듬해 1967년 락희화학과 미국 칼텍스사가 5대 5로 합작해 ‘호남정유(현재 GS칼텍스)’를 설립하고 1969년 여수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국내 민간업체가 외국자본과 합작한 최초이자 최대규모였다.

  • 1969년. 연암 구인회의 꿈을 담아, 연암문화재단 설립

    구인회 회장은 우리기업이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바탕으로 1969년 12월 연암문화재단을 설립한다. 재단은 학술지원, 청소년 교육, 문화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해오고 있다.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데 기여하고자 ‘연암 국제 공동연구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교육 발전을 위해 진주시립 연암도서관을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LG아트센터, LG디스커버리랩 운영을 지원하고, 청소년 교육의 일환으로 LG와 함께하는 사랑의 다문화 학교, LG상남도서관 온라인 과학교육 서비스을 운영하고 있다. 구인회의 미래를 향한 꿈이 그대로 담긴 연암문화재단은 우리 사회의 ‘풍요롭고 행복한 내일’을 만들기 위한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다.

  • 칸맞춤을 위한 빈 li

경영철학

구인회

인화가 기업경영의 근간이다.

“기업의 활동은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내부의 인화가 무엇보다 서야 한다”

구인회는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늘 새로운 사업을 일구는 기업인이었던 한편 내부적으로 '인화(人和)가 기업경영의 근간'임을 강조하였다. ‘기업은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하는 활동'으로 종업원을 아끼는 것이 기업이 흥하는 지름길이며 기업의 성패는 사람 쓰기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만사가 잘 되더라도 인화가 깨지면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도리이며, 선택한 인재는 훌륭히 갈고 닦아서 잠재한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존중의 경영을 실천했던 구인회의 뜻은 기업문화를 넘어 사회와 국가에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