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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대우)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발전시켜온
한국 대표 기업인의 삶과 경영철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물

김우중

1936년 12월 19일 ~ 2019년 12월 9일
김우중

대우그룹의 창업주입니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수출로 회사를 초고속 성장시키며 전세계를 대한민국 경제영토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를 설립하고,
알래스카에서 아프리카까지 세계를 무대로 거침없이 활약한 김우중은 외환위기 중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국가경제회생을 위해서도 노력하였습니다.

생애

1936 ~1966

  • 1936.12
    • 경상북도 대구 출생
  • 1943
    • 대구 덕산국민학교 입학
  • 1945
    • 서울로 이사, 수송국민학교로 전학
  • 1949.9
    • 경기중학교 입학
  • 1956.2
    • 경기고등학교 졸업
  • 1956.4
    •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 입학
  • 1959
    • 부흥부(현 기획재정부) 인턴 근무
  • 1960
    • 연세대 졸업, 한성실업 입사
  • 1963
    • 영국 유학길에 싱가포르 경유, 대량의 섬유 원단 수주 (유학포기)
  • 1964.4
    • 정희자와 혼인

1967 ~1976

  • 1967.3
    • 대우실업 창업
  • 1967
    • 창업 첫해 57만 달러 수출
  • 1968
    • 부산사무소 및 부산 제1공장 설립
  • 1968.11
    • 제5회 수출의 날 산업훈장 수훈
  • 1969.7
    • 국내기업 최조 해외지사 개설 (시드니, 싱가포르)
  • 1970
    • 정부에 새마을공장 도입 건의, 제1호 새마을공장 설립
      (농한기 스웨터 생산해 전량 해외 수출)
  • 1970.11
    • 수출의 날 철탑산업훈장 수훈
  • 1972.11
    • 수출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훈
  • 1973.11
    • 수출의 날 수출유공 대통령기 수상
  • 1974.11
    • 수출의 날 1억 불 수출탑 수상

1977 ~1986

  • 1977.3
    • 학교법인 대우학원(아주대학교) 설립
  • 1977
    • 미 수교국 수단 방문, 타이어 공장 수주로 국내 최초 플랜트 수출
      (한국 정부 최초 제3세계 수교의 계기가 됨)
  • 1977.6
    • 대우센터 빌딩 준공
  • 1977.12
    • 수출의 날 4억 불 수출의 탑 수상
  • 1978.1
    • 사재 50억 원 출연, 대우문화복지재단(현, 대우재단) 설립
  • 1978.7
    • 새한자동차 지분 50% 인수
  • 1978.9
    • 대우조선공업 설립, 옥포조선소 인수(10월)
  • 1979.11
    • 수출의 날 국내 기업 최초 10억 불 탑 수상
  • 1979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80.8
    • 한국중공업 출범, 초대 대표이사 취임
  • 1980.9
    • 대우그룹 회장 취임
  • 1980.10
    • 200억원 상당의 개인재산 전부를 대우문화복지재단에 출연
  • 1981.3
    • 화력발전 설비 국내 최초 국산화 성공 (울산 화력발전소 4,5,6호기 준공)
  • 1981.3
    • 대우조선, 세계 최대 골리아스 크레인 설치
  • 1981.10
    •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종합 준공
  • 1982
    • 국내 기업 최초, 기혼 여직원 공채제도 실시
  • 1982.9
    • 리비아 진출 첫 프로젝트 가리니우스 의과대학 준공
  • 1982
    • 수출의 날 수출 20억 불 탑 수상
  • 1983.1
    • GM으로부터 경영권 인수, 새한자동차를 대우자동차(주)로 상호 변경
  • 1983.2
    • 거제도에 대우병원 설립 및 개원
  • 1983.10
    • 대우 힐튼호텔 개관 (지상 22층, 712개 객실)
  • 1984.6
    • 국제상업회의소(ICC)로부터 '국제기업인상' 아시아 기업인 최초 수상
  • 1985.11
    • 국내 기업 최초로 대졸 여직원 공채 시행
  • 1985~1986
    • 서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위원
  • 1985~1989
    •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

1987 ~1996

  • 1987.1
    • 포춘(Fortune), ‘올해의 세계 50대 기업인’ 선정
  • 1987.3
    • 대우중앙연수원 개관
  • 1988.3
    • 이코노미스트,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선정
  • 1989.8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간」
  • 1991.6
    • 벨기에 국왕으로부터 ‘대왕관 훈장’ 수훈
  • 1992.1
    •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북한 방문
  • 1993
    • 국내 기업 최초, 세계 최대규모로 베트남 진출
      (가전공장, 상용차 조립공장 등)
  • 1993.3
    • 그룹의 미래전략으로 '세계경영'과 '기술대우' 추진 선언
      (총 1,000여개 해외거점과 35만 임직원을 보유한 세계적 기업 발돋움)
  • 1994.9
    • 아주대학교의료원 개원
  • 1995.11
    • 폴란드 국영 승용차회사 FSO 인수
  • 1996.3
    • 루마니아 자동차생산법인 로대(RODAE)자동차 공장 준공식

1997 ~2019

  • 1998.1
    •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임직원 대상으로 ‘금모으기 운동’ 전개,
      이후 전국으로 확산
  • 1998~1999
    • 제24~25대 전경련회장
  • 1999.11
    • 대우그룹 회장직 사임
  • 2011~
    • 대우세계경영연구회와 함께 해외청년사업가 양성 사업(GYBM) 시작
  • 2014.8
    • 싱가포르 국립대 신장섭 교수, ‘김우중과의 대화’ 출간
      - 부제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2015.10
    • 싱가포르 ‘제20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 기조 강연 (마지막 강연)
      “경제 선진국 되려면 제조업 육성, 해외 진출(경제인구의 20%), 인재육성에 힘써야 한다.”
  • 2015.10
    • 자서전 ‘김우중 어록’ (나의 시대, 나의 삶, 나의 생각),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개정판 (‘세계경영의 꿈’, ‘해외사업가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추가 수록) 출간
  • 2019.12
    • 별세
  • 2020.12
    • 아포리즘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출간

주요사건과 업적

  • 유학길에 이룬 국내 최초 해외직수출

    1960년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으로 졸업을 앞둔 김우중은 유학을 준비하던 중 자신에게 장학금을 수여한 무역회사 한성실업의 김용순 사장의 부탁으로 회사일을 돕는다. 서류작성, 외환업무 등 무역실무에서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발휘하였고 공장에서 숙식까지 하는 열정을 보였다. 1964년 계획대로 다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김우중은 여행 목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을 경유하다가, 여행은 커녕 현지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사업가 본능을 발휘해 싱가포르에서 대량의 섬유원단을 수주하고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온다. 국내 최초 해외직수출을 성사시킨 것이다. 수주내역만 넘기고 다시 영국으로 떠날 계획이었지만 1년 넘게 기계를 돌려도 소화할 수 없는 주문량임을 깨닫고 유학을 포기한다. 유학에 미련이 남은 김우중은 한성실업을 그만두고 유학 수속을 밟았으나 여권이 1년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협력사 사장이었던 도재환은 김우중에게 동업을 끈질기게 제안했고 결국 김우중은 유학을 포기하고 1967년 3월 ‘대우실업'을 창업한다. 시작부터 실이 없어 천을 짜지 못할 정도로 사업은 번창했다. 김우중은 1969년 무역업체 최초로 해외지사를 시드니와 싱가폴에 만들고 선도적으로 수출품목들을 발굴한다. 중간수입업자를 거치지 않고 현지법인을 직접 거래하는 등 수익성도 월등히 좋았다.

  • 아프리카 시장개척과 함께한 민간외교

    김우중은 1970년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한다. 선진국이 진출을 꺼리는 블루오션으로 잠재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미수교국으로 수단도 마찬가지였다. 1976년 김우중은 누메이리 대통령을 수 차례 시도 끝에 접견하여 영빈관 건설, 원면 가공수출, 타이어공장 건설 등을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 들어져 양국이 영사관계를 수립하게 이른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리비아, 나아지리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다. 수단의 최대 플랜트 건설이었던 타이어공장이 완공된 날, 수단정부는 감사의 의미로 이날을 한국의 날(1980년 5월 29일)로 선포했다. 리비아에서도 대우신화는 계속됐다. 뱅기지의 가리우니스 의과대학 건설을 공기보다 앞당기자, 이에 놀란 리비아 정부는 부스타 비행장 건설을 맡겼는데 이것 역시 공기를 3개월이나 단축했고, 우조 비행장 건설도 맡게 된다. 이 때 리비아의 최고지도자 카다피가 소문을 듣고 건설현장을 방문해 열흘을 머물며 한국 근로자의 열정과 성실에 감동을 받는다. 그 후 대우는 20년 동안 리비아 도로의 3분의 1을 건설하고 주택 1만 5천세대를 건설, 270개의 학교를 짓고 수많은 병원, 플랜트 등을 건설한다.

  • 다양한 채용제도로 인재를 찾다

    1974년 김우중은 그룹공채를 실시해 총 1400명의 지원자 중 43명을 선발했다. 1981년 국내 최초로 기혼 여성 고용제도를 도입하고 1986년에는 대졸 여직원을 공개채용하였는데 200명 모집에 5200명이 지원해 2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2년  모든 신입사원을 인턴제로 뽑는 '신입사원 채용 인턴제'를 국내 최초로 시도했으며 1993년에는 전국을 돌며 채용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김우중은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인재를 선발하는데 적극적인 열의를 보였다.

  • 제조업 진출, 부실기업을 국내 최대 종합기계회사로

    1975년말, 김우중은 정부로부터 한국기계 인수를 제안 받는다. 한국기계는 차관 250억원을 투입해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디젤엔진공장을 갖고 있었으나 가동률이 10%에 불과해 실적부진과 재무악화로 산업은행 관리를 받고 있었다. 공장을 방문한 김우중은 철을 잘라 용접하는 것이 천을 잘라 재단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라경제를 위해 어떻게든 살리겠다는 생각에 인수를 결정한다. 김우중은 시설은 잘 돼 있으니 잘 파는 것이 문제라 생각하며 판매활로를 개척한다. 내수는 국산 디젤엔진이 외산보다 비싸다며 구매를 꺼리던 국내 자동차회사들을 공략했다. 김우중은 우선 대량으로 엔진을 생산해 공급단가를 낮춘 다음 공장에 재고를 쌓아 놓았다. 그리고 공장시찰을 나온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에게 재고를 보이며 어려운 사정을 얘기해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엔진을 구매할 수 밖에 없도록 압박했다. 동시에 수출시장을 개척하여 디젤엔진이 필요한 발전기, 건설장비, 선박 등을 찾아 해외판매를 늘려나간 결과 인수 후 1년 만에 흑자를 냈는데 이는 한국기계가 설립 된 이래 13년 만에 첫 흑자였다. 1976년 10월 한국기계는 대우기계를 흡수합병하고 상호를 대우중공업으로 바꾼다. 대우중공업은 산업기계, 정밀기계, 공작기계, 디젤엔진, 철도차량 공장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종합기계회사였다.

  •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우뚝서다
    (세계경영)

    김우중은 1978년 한국기계에 이어 정부로부터 산업은행 관리를 받던 부실기업 새한자동차의 한국측 지분 인수를 제안 받았다. 자동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국가를 위한 일이면 한다는 김우중의 신념 아래 GM과 50대 50으로 합작투자 형식으로 인수, GM이 경영을 맡고 대우는 총무, 인사 등 지원업무를 맡기로 하였다. 그러나 1980년, 1981년 새한자동차는 연이어 대규모 적자를 냈고 김우중은 의사결정이 이원화된 합작투자 방식으로는 위기를 신속하게 타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우중은 GM과의 험난한 타협에 나선 끝에 1982년 12월 경영권을 인수하고 1983년 상호를 대우자동차로 변경한다. 그리고 승용차 부문에서 로얄살롱, 로얄프린스, 로얄 엑스큐 등 로얄시리즈를 개발하여 성공을 거둔다. 또 소형차 맵시나, 픽업트럭인 맥시, 각종 대형트럭과 특장차를 출시해 국내차 시장의 강자로 부상한다. 해외수출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김우중은 강력히 GM에 요구하여 1986년 6월에 첫 번째 월드카 ‘르망'이 탄생한다. 김우중은 GM이 수출을 하는데 기대보다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1991년 대우조선에서 국내 최초의 경차 ‘티코’를 만들어 내수와 수출에 성공하며 자신감을 얻고 1992년말 GM의 지분 50%를 모두 인수한다. 이후 대우자동차는 폴란드, 루마니아, 우주베키스탄 등 동유럽 국가와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공장을 설립하며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 부실기업 해결사,
    노사문제에 보인 진정성

    김우중은 또다시 정부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건설이 중단된 옥포조선소(경남 거제시)를 인수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새한자동차를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조선경기도 나빴기에 김우중은 망설였지만 이내 중화학공업 육성이라는 사명감으로 1978년 9월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0월에 폐허에 가까운 옥포조선소를 인수한다. 대우조선공업은 인수 당시 30%에 불과했던 공정률을 공사재개 1년만에 70%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노르웨이 화학제품운반석 4척을 수주하여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식과 함께 선박 명명식이 거행됐다. 그러나 글로벌 조선경기는 1980년대 들어 점점 악화됐고 여기에 1987년 6.29 선언 여파로 전국에 퍼진 노사분규가 대우조선공업에도 일어났다. 조업중단에 따른 영업손실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김우중은 옥포에 내려가 상주하며 직원들을 만나며 회사 정상화 방안을 구상한다. ‘FAMILY TRAINING’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원들 모두 대우의 한 가족임을 일깨웠으며 직접 면담을 통해 건의사항들을 수렴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공장을 돌아다니며 현장직원들과 얘기하며 서로 간의 오해와 경계를 허물었다. 1991년 마침내 대우조선은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끝이 없을 것으로 보이던 노사분규도 일어나지 않았다. 1993년에는 조선부문 수주 세계 1위 조선소라는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GYBM)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기업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우중은 생애 마지막 사업을 청년 사업가 양성으로 정했다. 김우중은 1989년에 출간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부제를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고 할 정도로 청년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2011년 김우중은 대우인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통해 글로벌 YBM(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s) 과정을 베트남에 만들어 운영을 시작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연수를 받은 후 현지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일자리를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연수에 참가했다. 이후 GYBM은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으로 사업을 확장해 천 명이 넘는 졸업자들을 배출하며 세계를 무대로 뛰는 제2의 김우중들을 키우고 있다.

  • 기초가 튼튼해야 미래 발전이 가능하다

    1981년부터 학술논저, 연구번역, 공동연구 등에 대한 지원과 2,000건 이상의 학술연구지원 실적으로 학계와 기초학문분야 최고의 실적을 쌓고 있다. 또한 지원에 의해 제출된 연구결과를 '대우학술총서'의 출간으로 연계시킴으로써 학술사업의 기본적인 틀을다지게 되었다. 800여권에 이르는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는 단일 학술총서로서는 그 규모가 세계적 수준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학술총서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 칸맞춤을 위한 빈 li

경영철학

김우중

꿈이 행복의 길을 열고 노력이 그 길을 걷는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꿈이라고 얘기합니다” 2017년 GYBM 연수생과의 대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말했던 김우중은 무역, 건설, 전자, 자동차, 조선, 중공업, 금융, 호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말 그대로 수 많은 업적을 쌓았다. 만 30세의 나이로 대우를 설립한 그는 ‘수출’만으로 회사를 급격히 성장시키며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신화’나 ‘우상’이라는 말 뒤에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생을 헌신한 기업인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미래에 대한 성찰과 내일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그는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이 넘쳤던 좋은 어른이자 내일을 꿈꾸는 기업가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