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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73년 포항종합제철 준공식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한국경제의 결정적 순간 등
기업활동과 관련된 컨텐츠들을 실었습니다.

“이 고로의 불꽃이 국가재건, 민족중흥의 불꽃이야.”
“이 불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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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제철 1기 설비준공식(1973.7.3) 출처 : 포스코

1973년 7월 3일, 광화문 사거리에 대형 아치가 세워졌다. 포항종합제철 제1기 설비 준공을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준공식에 참석하는 내빈들을 위해 서울에서 포항까지 특별열차가 운행됐고, 기념 우표도 발행됐다. 포항종합제철소 전경과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고로에서 첫 쇳물이 나오는 순간을 담은 10원권 컬러 우표였다.

이날 오후 2시, 포항종합제철 1기 설비 종합준공식이 열렸다. 황량한 모래밭이던 포항 영일만에는 이제 조강 연산 103만t 규모의 제철소가 우뚝 서 있었다. 쇳물에서 제품에 이르기까지 일관생산체제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제철소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축하연설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포항제철이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발전에 핵심이자 근간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준공식이 끝난 후 우리나라 최초의 고로에서 웅장하게 쏟아지는 시뻘건 쇳물을 바라보며 박정희와 박태준 사장은 벅찬 대화를 나누었다. “임자, 수고했어” “아닙니다” “이 고로의 불꽃이 국가재건, 민족중흥의 불꽃이야” “이 불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그래. 우리는 이 불꽃을 짊어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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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제철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왼쪽 첫 번째) (1973. 7. 3) 출처 :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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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종합제철 준공기념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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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의 포항종합제철 준공 기념 아치(1973. 7.3) 출처 :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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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1고로 전경 출처 : 포스코

박태준, 종합제철소 건설 임무를 맡다

철강산업은 건축, 기계, 자동차, 선박, 전자 등 모든 산업의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해방 이후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우리 정부는 꾸준히 종합제철소 건설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금 부족과 정국 혼란 등으로 무산되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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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피츠버그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1965.5.) 출처 :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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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제철소 착공식에서 박태준 사장,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경제부총리(왼쪽부터)가 착공 버튼을 누르고 있다. (1970. 4. 1.) 출처 : 포스코

박정희 대통령 또한 집권 초기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발표하면서 제철소 건설을 기획했다. 그의 구상이 구체화된 것은 1965년 미국 피츠버그의 철강공업 지대를 돌아보고 온 이후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을 사장으로 임명하고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를 창립했다. 박태준은 만성적자와 부패에 시달리던 대한중석을 부임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돌려놓은 인물이었다.

기공식까지 치렀으나 자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조사단은 포항제철 사업의 타당성을 부인해 찬물을 끼얹었고, 차관 조달을 약속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은 오랜기간 지급을 끌다가 결국 와해됐다. 박태준은 1965년 한일협정 타결 후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대일청구권자금을 전용해 제철소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박태준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정계와 철강업계 지도자를 직접 설득한 끝에 일본 정부의 협조를 얻는데 성공했다.

중화학공업 발전의 기반이 된 포스코

1970년 4월 1일, 대일청구자금과 일본상업은행 차관을 합쳐 총 1억2,370만 달러를 조달해 포항종합제철소 1기 설비 건설에 들어갔다. 공사비만 1천 200억 원.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3배가 투입되었으며, 39개월간 연인원 315만 5천여 명이 공사에 동원됐다. 박태준 사장은 건설현장에 상주하며 현장의 모든 이들에게 “선조들의 핏값인 대일청구권자금으로 건설하는 만큼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 하여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서 속죄해야 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의 의지에 큰 울림을 받은 현장의 직원과 건설 요원들은 밤낮없이 돌관공사를 강행해 예정 공기를 두 달이나 단축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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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연코일에 휘호하는 박태준 사장 (1972.10.3) 출처 :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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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기 고로에서 첫 쇳물이 터져나온 순간 만세를 부르는 박태준 사장(앞줄 왼쪽 두번째)과 임직원 (1973. 6. 9. 오전 7시 30분) 출처 : 포스코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대형 고로에서 오렌지빛 쇳물이 터져 나왔다. 1개월 후 포항 1기 설비 종합준공식이 열렸고, 준공 첫해부터 40여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포항 1기 설비 준공을 신호탄으로 한국 경제의 산업구조는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이동하였으며, 포스코의 성장은 조선, 자동차, 전자, 기계 등 산업 전반의 비약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