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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정(GS)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발전시켜온
한국 대표 기업인의 삶과 경영철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물

허만정

1897년 11월 24일 - 1952년 2월 26일
허만정

LG그룹의 공동창업자이자 GS그룹의 시조이며, 독립운동가입니다. 민족자본가로써 물질적 재원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에 참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움과 동시에 국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학교 설립 등에 헌신했습니다. 또한 해방 후 도래할 새 나라를 부강하게 할 것을 목표로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기업들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생애

1897 ~1952

  • 1897.11
    • 경상남도 진양군 하봉면 승산리 출생
  • 1919
    • 서울에서 3.1만세 운동 경험
  • 1919
    • 백산무역회사(독립운동 지원을 위한 비밀자금조달관) 공동설립
  • 1920
    • 주식회사 협성상회 감사로 취임
    • 주식회사 주일상회 취체역(이사)으로 취임
  • 1922
    • 대한청년단원 황임성에 30원 지원
  • 1923
    • 진주 형평운동(백정 해방 운동) 후원
  • 1925
    •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진주여고) 설립
  • 1927
    • 동아일보사 진주지국 고문 임명
  • 1928
    • 중외일보사 부사장 임명
  • 1947.1
    • 락희화학공업(LG그룹 전신) 공동 창업
  • 1952.2
    • 별세

주요사건과 업적

  •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곳간을 열다

    경상남도의 이름난 만석꾼 양반집에서 태어난 허만정은 평소 근면과 베품을 강조하던 아버지 허준의 가르침을 따라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자신이 살던 승산마을에 큰 가뭄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자, 그는 집안의 곳간을 열어 쌀을 나눠주었다. 단, 쌀을 얻으려는 자는 마을 옆 산의 돌을 가져다 집 옆에 쌓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쌓인 돌은 수개월 만에 작은 돌산을 이룰 정도 였다. 사람들이 돌을 쌓게하는 이유를 묻자, 허만정은 가난한 자의 배고픔을 구제하는 것이 인간된 도리이자만, 노력하는 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 1919년. 등불에 불이 붙던 날

    조국이 위태로웠던 시절에 태어난 허만정은 22살이었던 1919년 서울에서 3.1만세 운동을 경험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무참히 학살되고, 감옥에 붙잡혀 들어가는 모습을 본 그는 우리나라가 자유를 회복하고 독립을 이루는데 온 힘을 다하기로 다짐한다.

  • 그만의 방식으로 시작된 독립운동

    1919년 허만정은 백산상회 설립자 안희제를 만난다. 사업을 통한 수익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자는 안희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민족기업인들과 함께 힘을 합쳐 백산무역회사를 세운다. 회사는 전국 주요 도시에 지점을 두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백산무역회사는 조선인의 손으로 만든 질 좋고 값싼 물건을 조선인에게 팔아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자 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의 자금줄로써 역할을 해오다 일제의 갖은 괴롭힘으로 결국 1927년 해체되고 말았다.

  • 1925년. 민족의 미래를 위한 교육 사업

    허만정은 국력을 키우기 위해 무지를 타파하고 교육에 힘써야 함을 깨닫고, 학교 설립의 뜻을 부친에게 밝혔다. 이후 그의 부친 허준은 소유하던 함안 땅을 제공하였고, 허만정은 이를 바탕으로 1920년 진주일신고등보통학교의 설립을 주도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일본 총독부의 방해에 부딪혀 실패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허만정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학교 건립에 열성을 다하여 1925년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고)를 설립하는데 성공한다.

  • 1945년.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한 준비

    허만정은 8.15 해방 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준비에 힘을 보탰다. 1945년 9월 7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민정 수습 방법, 정당 설립, 국가 정책 등에 대한 국민의 총의를 모으기 위해 ‘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허만정은 준비위원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 1946년. 사업투자로 국가 경제재건에 나서다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가 경제성장에 뜻을 세운 허만정은 1946년 사돈지간이자 같은 마을 출신 구인회(LG창업주)의 사업능력을 높게 평가해, 사업투자와 함께 셋째 아들 허준구(LG건설 명예회장)를 통해 공동 경영에 참가 하였다. 이듬해 1947년 구인회와 허만정의 공동출자로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은 국산치약과 화장품을 만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허만정과 구인회의 동업관계는 후대에도 원만하게 유지돼 2005년 LG와 GS그룹으로 분리되는 그 순간까지 '아름다운 동행' 이라고 불리었다.

경영철학

허만정

민족의 등불이 된 기업인

“돈은 개미같이 부지런히 모으되 의로운 일에는 크게 써야 한다.”

허만정은 나라가 위기를 겪는 상황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기꺼이 내어놓은 의인이었다.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늘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 임했던 그는 ‘재화’의 본질과 역할을 단순히 개인의 부와 만족을 채우는 것으로 한정 짓지 않았으며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의 기업가 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기업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