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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한화)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발전시켜온
한국 대표 기업인의 삶과 경영철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물

김종희

1922년 11월 12일 - 1981년 7월 23일
김종희

한화그룹의 창업주입니다. ‘사업보국’에 뜻을 세워 화약산업을 일으켜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노벨’이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갖고 있으며 기계, 석유화학, 에너지등 중후 장대형 산업을 중심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였던 기업인입니다.

생애

1922 ~1942

  • 1922.11
    •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면 부대리 출생
  • 1935.3
    • 직산공립보통학교 졸업
  • 1936.3
    • 성환공립심상소학교 고등과 1년 수료
  • 1940.11
    • 경기공립상업학교 4년 중퇴
  • 1941.12
    • 원산공립 상업학교 졸업
  • 1942
    •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 입사

1943 ~1952

  • 1944
    • 화약공판 생산부 다이너마이트계 계장
  • 1945.9
    • 화약공판 지배인 임명
  • 1946.4
    • 화약공판 관리인 임명
  • 1950
    • 화약공판 부산영업소로 피난
  • 1951
    • 화약공판과 미8군 화약관리 용역사업 체결
  • 1952.6
    • 조선화약공판 운영권 획득
  • 1952.10
    • 한국화약 설립 (현 한화)

1953 ~1962

  • 1955.10
    • 조선유지 인천화약공장 불하 매수
  • 1956.4
    • 초안폭약 생산 개시
  • 1957.10
    • 다이너마이트 국산화 성공
  • 1959
    • 화약류 완전 국산화 대체공급 개시

1963 ~1972

  • 1964.1
    • 신한베어링공업(현 셰플러코리아) 인수
  • 1965.8
    • 한국화성공업 설립 (현 한화솔루션)
  • 1966.7
    • 태평물산(현, ㈜한화 글로벌 부문) 설립
  • 1967
    • 태평양건설(현 한화건설) 설립
  • 1967.9
    • 주한 그리스 명예총영사 임명
    •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 1968.9
    • 제일화재해상보험(현 한화손해보험) 인수
  • 1969.11
    • 경인에너지 설립(현 SK인천석유화학)
  • 1972.1
    • 그리스 금성십자대훈장
  • 1972.4
    • 경인에너지 정유공장 및 발전소 준공
  • 1972.12
    • 한국프라스틱공업 설립

1973 ~1981

  • 1973.2
    • 대일유업(현 빙그레) 인수
  • 1973.9
    • 동업공업 인수
  • 1973.11
    • 태평개발(현 한화호텔&리조트) 설립
  • 1974.9
    • 유니온포리마(현 한화컴파운드) 설립
  • 1975.5
    • 학교법인 천안북일학원 설립
  • 1976.5
    • 성도증권(현 한화투자증권) 인수
  • 1976.9
    • 서울플라자호텔 개관
  • 1977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81.7
    • 별세
  • 1981.10
    • 금탑산업훈장 추서

주요사건과 업적

  • 1942년. 화약공판 직원 김종희

    김종희는 1942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국내 화약판매 독점업체였던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해 실력과 성실함을 인정받고 지배인 자리까지 올라 회사의 업무를 총괄했다. 해방이 된 후 나라의 사정이 금방 나아질 거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김종희는 보유하고 있던 화약을 지키기 위해 총성을 피해 화약고와 화약고 사이를 오갔고, 화약수입과 화약공판의 정상적인 업무 진행을 위해 헌신을 다했다.

  • 1952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일으키다, 한국화약 설립

    전쟁은 계속됐다. 그러나 김종희는 화약산업이 언젠가 나라의 희망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경제 불모지를 재건 하기 위한 산업용 화약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자신이 일했던 조선화약공판을 1952년 6월 12일 관재청에서 실시한 매각 입찰을 통해 운영권을 획득하고 1952년 10월 9일 한국화약을 설립한다. 김 회장은 무너진 국토를 재건하는데 필요한 화약을 차질없이 공급하고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로 국가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는 일에 몰두했다.

  • 1956년. 초안폭약 생산에 성공

    김종희는 화약을 국산화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한에 유일한 조선유지 인천화약공장의 설계도를 일본에 가서 구해와 정부에 복구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55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로 한국화약은 인천공장을 불하 매수한다. 복구작업을 순조로이 마치고 김종희는 1956년 4월 초산암모늄이라는 약제를 주성분으로 한 초안폭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는 다이너마이트 생산의 전 단계로 전국의 탄광으로 팔려나갔으며, 한국화약주식회사는 이로써 국내 화약산업의 성공적인 첫 단추를 끼웠다.

  • 1957년. 국산 다이너마이트 생산 성공

    김종희의 다음 목표는 다이너마이트였다. 다이너마이트 제작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하게 배합할 수 있는 기술자들을 어렵게 구해, 본격적인 다이너마이트 생산작업을 시작한다. 니트로글리세린 합성작업은 순식간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이에 김종희와 한국화약의 임직원들은 만만의 준비를 다하여 마침내 1957년 5월 29일 인천화약공장에서 니트로글리세린을 제조해낸다. 그리고 같은해 10월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트(젤라틴 다이너마이트) 생산을 연이어 성공시킨다. 김종희의 한국화약은 여러가지 화약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집중하였고, 그 결과 정부는 더이상 해외로부터 화약을 수입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귀중한 외화를 아끼고 나라의 경제적 기반을 쌓게 하는 일에 크게 기여했다.

  • 1964. 국가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만년적자 신한베어링 인수

    국내 유일의 베어링회사였던 신한베어링공업은 서독으로부터 무리하게 최신 기계를 들여온 탓에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 기계공업 진출을 타진하던 김종희는 신한베어링공업의 매출부진과 외제 베어링의 기술력에 밀려 설자리가 없는 현실에 인수를 망설였다. 회사 내부적으로 최소 10년 이상은 손해 볼 각오를 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검토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신한베어링이 쓰러지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판단에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자’는 마음으로 과감히 투자할 것을 결정했다. 1964년 1월 신한베어링을 인수한 김종희는 자금난으로 체불된 종업원의 임금을 전액지급하고 한국베어링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두 차례 걸쳐 증자를 단행해 재무구조를 개선했으며 품질 개선을 위해 해외 기술도입을 적극 추진해 나갔다.

  • 1972년. 경인에너지 정유공장 및 발전소 준공

    1967년 정부는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민간화력발전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김종희는 화력발전(화전)건설과 함께 화전에 필요한 연료 방카C유를 자가생산으로 공급할 간이 정유공장을 동시에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향후 석유 수요증가에 따른 제3정유사업자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김종희는 1968년 3월 미국의 유니온오일과 합작투자 계약서를 체결하고, 다음달 4월에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는다. 1969년 2월 인천시 해안가 34만평 대지 위에 화력발전소와 간이 정유공장 기공식이 거행됐으며, 같은 해 11월 경인에너지개발주식회사로 설립등기 한다. 이즈음 정부에서 제3정유사 설립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자 경인에너지개발은 정식 정유사업 인가를 강력히 추진했다. 마침내 1970년 김종희의 바람대로 경인에너지는 제3정유회사로 내정된다. 1972년 4월 율도 발전소 운동장에서 화전발전소와 정유공장 준공식이 성대히 치뤄졌다.

  • 1973년, 서울 대표 랜드마크 호텔 건설

    1973년 서울시의 태평로 재개발계획으로 한국화약 사옥이 헐리게 되자, 김종희 회장은 정부로부터 그 자리에 호텔을 건축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당시 제대로 된 숙박시설이 없어 한국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던 그는 1973년 ‘서울플라자호텔’ 건설 기공식을 열고 1976년 10월 개관했다. 서울의 서소문 방향에서 시청 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서울플라자호텔’은 서울의 랜드마크로 우뚝 서 있다.

  • 칸맞춤을 위한 빈 li
  • 칸맞춤을 위한 빈 li

경영철학

김종희

화약처럼 진실되고 정직해야만 한다.

“화약은 진실하다. 화약은 정직한 장소에서 정직한 시간에 폭발하기 때문이다.
화약을 만드는 사람은 경영자를 중심으로
관리자, 기술자, 기능원 모두가 화약처럼 진실되고 정직해야만 한다”

전쟁통에도 국산 화약의 명맥을 잇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김종희는 평생을 걸쳐 국가 기간산업과 방위산업을 통해 경제에 기여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겼다. 김종희는 평소 소탈한 차림을 즐겼고, 소위 명품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기업 경영에 있어 정치와 기업이 결탁하는 일을 늘 경계하며 ‘화약인의 정직함’을 미덕으로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