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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롯데)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발전시켜온
한국 대표 기업인의 삶과 경영철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물

신격호

1921년 11월 3일 - 2020년 1월 19일
신격호

롯데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회장입니다. 지난 70여년 간 롯데그룹을 이끌며 대한민국의 유통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맨손의 거인’으로 불린 그는 1941년 83원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48년 일본 롯데, 67년 한국 롯데제과를 설립한 이래 식품, 호텔, 유통, 석유화학 등 다양한 사업 분야를 영위하는 기업으로 키워낸 장본인입니다.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관광산업 분야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생애

1921 ~1961

  • 1921.11
    • 경상남도 울산 삼남면 둔기리 출생 5남 5녀 중 맏이
  • 1939
    • 울산농업전수학교 졸업
  • 1941
    • 일본으로 건너감
  • 1946
    • 일본 와세다대 고등공업 이공학부 졸업
    •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 설립
  • 1947
    •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에서 껌 생산 시작
  • 1948.6
    • (주)롯데 설립(일본), 종합제과업체로 발돋움 시작
  • 1958.5
    • ㈜롯데 설립(한국)
  • 1966.11
    • 동방아루미공업 설립(현, 롯데알미늄)
  • 1967.4
    • 롯데제과 설립(한국)

1973 ~1981

  • 1973.5
    • 호텔롯데 설립
  • 1973
    • 롯데전자공업 설립 (현, 롯데알미늄 흡수합병)
  • 1974
    • 롯데상사 설립
    • 칠성한미음료 인수(현, 롯데칠성음료)
  • 1977
    • 삼강산업 인수 (현, 롯데제과)
  • 1978
    • 평화건업 인수 (현, 롯데건설)
  • 1978
    •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 1979
    • 호남석유화학 인수 (현, 롯데케미칼)
  • 1979
    • 롯데리아(현, 롯데GRS), 롯데쇼핑 설립
  • 1981
    • 동탑산업훈장 수훈

1982 ~1991

  • 1982
    • 대홍기획, 롯데자이언츠 설립
  • 1983
    • 롯데장학재단, 롯데중앙연구소 설립
  • 1985.5
    • 롯데캐논(현 캐논코리아) 설립
  • 1988
    • 롯데호텔월드, 롯데백화점 잠실점 개장
  • 1989.7
    • 롯데월드 개장

1992 ~2001

  • 1994.8
    • 롯데복지재단 설립
    • 코리아세븐 인수
  • 1995.9
    • 금탑산업훈장 수훈
  • 1995.11
    • 롯데캐피탈 설립
  • 1996
    • 롯데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 및 롯데정보통신 설립
  • 1998.4
    • 롯데마트 설립
  • 1999.9
    • 롯데시네마(현, 롯데컬처웍스) 설립
  • 2000
    • 롯데슈퍼 설립
  • 2000.1
    • 롯데닷컴(현, 롯데이커머스) 설립

2002 ~2020

  • 2005.1
    • 현대석유화학 2단지 인수, 롯데대산유화(현 롯데케미칼) 설립
  • 2007
    • 우리홈쇼핑 인수, 롯데홈쇼핑으로 채널명 변경
  • 2012
    • 하이마트 인수(현, 롯데하이마트)
  • 2015
    • KT렌탈 인수(현, 롯데렌탈)
    • 미국 '뉴욕팰리스호텔' 인수
  • 2016
    •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 삼성BP화학(현, 롯데이네오스화학),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현, 롯데케미칼) 인수
  • 2017
    •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 롯데지주 주식회사 출범
    •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프닝
  • 2020.1
    • 별세

주요사건과 업적

  • 배움의 열망으로
    주경야독하던 유학생

    신격호는 1921년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의 농가에서 5남5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전수학교를 졸업하고 양을 목축하는 도립 종축장에서 잠시 일하다 배움의 열망으로 1941년 일본으로 넘어간다. 뱃삯을 내고 남은 돈은 83원, 친구의 자취방에서 지내며 우유배달을 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와세다중학 야간부에 다닌다. 신격호는 남다른 책임감으로 눈이오나 비가오나 배달시간을 정확히 지키기로 유명했다. 배달량이 점점 많아지자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본인이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여 맡은 일을 다해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며 와세다 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야간부 화학과에 진학한다. 한편 문학을 좋아했던 청년 신격호는 고학 생활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었다. ‘롯데’라는 기업의 이름은 젊은 시절 신격호의 몸과 마음을 뒤흔든 쾨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롯테(charlotte)’에서 나왔다.

  • 성실함으로 빌린 거금 5만 엔

    와세다고 2학년 당시 신격호에게 전당포와 고물상을 운영하던 노인 하나미쓰가 찾아와 사업을 할 것을 제안하며 당시 돈으로 5만엔을 투자한다. 과거 신격호가 자신의 가게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봤던 것이다. 하나미쓰는 커팅오일 공장운영을 제안했고 신격호는 청년사업가가 되어 사업을 준비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하기도 전에 일본 본토에 대한 폭격으로 공장이 완파되었고, 남은 돈으로 다시 시작한 커팅오일 공장 역시 미군에 다시 폭격 돼 전소된다. 1945년 해방 이후, 신격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에게 거금을 투자한 은인에게 돈을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한번 돈을 다른 이에게 융통하여 유지류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전쟁 후 폐허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요는 생길 것이라는 신격호의 예상대로 생산한 비누, 포마드 크림 등이 날개 돋힌 듯 팔려 1년 반 만에 하나미쓰에 빌린 돈을 모두 갚고도 집 한 채까지 더 선물하기에 이른다.

  • 껌처럼 늘어나는 인기.
    1948년 ㈜롯데 설립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들여온 껌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자 신격호는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껌을 모조리 사들여 씹으면서 연구했고, 약제사까지 고용한 뒤 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다른 품질의 ‘신격호 표 껌’이 우수하다는 점은 금새 소문 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과자점 주인들은 줄을 서서 납품을 희망하였다. 이때 신격호는 투자자를 모집하여 본격적으로 기업을 설립한다. 1948년 6월,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 ‘롯데’가 탄생했다. 그는 인근의 주부들을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고용하면서 고학생들에게는 '학비'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밀려드는 주문량도 모두 소화해냈다.

  • 1967년 달콤하고 배부른 대한민국의 시작. 롯데제과 설립

    초콜릿의 시장성을 미리 내다본 신격호는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일본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는 롯데가 일본에서 종합메이커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가 됐으며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으로 진출하여 성공을 이어 나갔다. 1965년 한일수교로 롯데의 국내투자의 길이 열리자, 신격호는 한국으로 들어와 1967년 4월 대한민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였다. 신격호는 롯데제과를 통해 국내 식품 산업의 빠른 현대화와 국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0년대에는 식품산업 부문을 확대해 사업다각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신격호는 일본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 투자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업보국이라는 신념 아래 모국 투자를 확대하여 일본 보다 한국사업을 점차 강화한다.

  • 창의성과 뛰어난 마케팅 감각

    신격호는 남다른 마케팅 감각과 창의성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껌이 초창기 일본에 들어왔을 때,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 것이라 직감하고 풍선껌을 쉽게 불 수 있도록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판매하거나 껌 포장 안에 1천만엔 추첨권을 넣는 이벤트를 마련해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신격호는 직접 제품명을 만들거나 제품의 광고문구 작업에도 참여했다. TV, 신문광고 등 홍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일본 롯데 껌의 대표 홍보 카피인 ‘입속의 연인’이라는 문구나, 롯데리아의 ‘리브샌드’라는 상품명을 직접 짓기도 했다. 이후 신격호는 광고 및 마케팅 산업을 리드하는 종합광고회사 대홍기획을 1982년 설립했다.

  • 1973년 관광불모지에
    호텔업 투자

    국가의 장래를 깊이 고민하던 신격호는,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을 통한 번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9년 3월, 6년간의 공사 끝에 롯데호텔(서울 소공동)의 문을 열며 신격호는 관광산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빌딩으로 1천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준하는 약 1억 5,000만 달러가 투입되었는데, 당시 호텔이나 관광 상품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과감한 결정이었다. 롯데호텔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치러질 당시 우리나라가 국제적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일에 일조하며 일류 호텔로 성장해 나갔다.

  •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들에게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

    신격호는 한국 관광산업이 고궁 등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변혁을 시도한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 밀려 있던 관광업을 민간의 힘으로 개척하려 한 것이다. 신회장은 1984년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 건설사업’을 지시하였다. 세계 최대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와 함께 호텔, 백화점을 함께 짓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시 잠실의 건설부지는 황량한 모래벌판과 물웅덩이 유수지였는데다 주변은 참외밭이었기에 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신격호는 ‘상권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좋은 상품과 수준 있는 서비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강조하며 잠실이 명동만큼 번화한 곳이 될 것이라 확언했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건축물을 남기고 싶다

    신격호는 대한민국 랜드마크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1987년 서울시로부터 랜드마크 사업에 필요한 부지 8만6,000여㎡를 매입했다. ‘롯데월드타워'의 밑그림이 그려진 순간이었다. 이후 롯데월드타워 건설 프로젝트는 건축 허가까지 24년이 소요되었고, 안전성 문제 등으로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신격호는 ‘된다’고 믿었다. 마침내 2017년 신격호의 롯데는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이자 2021년 기준,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한다. 총공사비 약 3조 8,000억 원, 연인원 500만명, 하루 최대 7천여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롯데월드타워는 ‘한국 건축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며, 서울의 낮과 밤을 지켜보고 있다.

  • 칸맞춤을 위한 빈 li

경영철학

신격호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한다.

“거화취실(去華取實),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집무실에 걸려있던 액자

신격호는 평소 소박한 생활로 화려한 것을 지양하고 실속을 지켜내는 경영 스타일을 몸소 실천하는 경영인이었다. 기업은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며, 기업인은 회사의 성공과 실패 모두를 자신의 책임하에 두고 신중한 경영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애정을 기반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사업역량을 집중하길 요구했으며, 확장위주의 방만한 경영은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다며 신중한 투자와 책임경영을 실천했다.